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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서를 쓰다 지리산 세걸산 밑 세등치의 물매화에게 지리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즐겁기만 했어.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들을 넘나들면서 너를 만날 수 있다고 믿었지. 그러다가 잊을 수 없는 가을을 맞이했어. 너를 찾아 나선지 십 년 정도 되던 때였단다. 억새들이 제 몸을 녹여 세걸산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이고 있었어. 우리의 두 눈이 마주친 것도 수 년 만에 제대로 갈아입었다는 지리산의 가을빔 때문일 거야. 첫눈에 너를 알아보았지. 키 작은 넌 목을 쭉 빼어 곱게 물든 단풍을 구경하려고 두리번거렸어. 매화를 쏙 빼 닮은 너의 민낯을 보고 이름 없는 골짜기를 잉태한 옹달샘의 물을 떠올렸어. 가녀린 꽃대에 매달린 하나뿐인 이파리는 너의 쓸쓸함을 내게 슬며시 건네주었지. 여리면서도 당돌한 너의 웃음이 내 지친 발걸음을 잊게 했어... 더보기
편지를 쓰다 지리산 서부능선 세걸산 밑 세등치로 띄우다 (1) 눈이 아직 내리지 않은 채 성탄절이 지나갔어. 발목까지 빠지며 하얗게 찍힌 발자국을 뒤돌아보고 너의 흔적이 아닐까 아쉬워해야 할 눈길은 다가오는 새해로 미뤄야 될 것 같아. 넌 어때. 춥지. 쓸쓸하지. 거기엔 눈이 내렸니. 오고가는 발걸음도 드물 거야. 스치는 바람은 얼마나 매섭니.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. 네가 기다리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번 가을에 찾아가지 못 했어. 서운하지. 사실은 너를 찾아갔었어. 늦게 갔지. 너는 언제나 10월 첫 주까지만 거기에 머물지. 그 때를 맞추어 가야 되는데 글쎄, 마지막 주에 갔어. 예상했던 대로 너는 없었어. 기다릴 수 없었겠지. 너를 원망하지 않아.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. 서둘러 제 때에 찾지 못한 내 잘못이지... 더보기
詩와 photo, 스마트 산수유 스마트 산수유 만복대 눈 녹아내리는 3월 구례 산동 지리산 허파가 된다 봄 깊숙이 들이마시려 허파꽈리를 가슴 끝에 세포 증식하는 지리산 산수유 겨우내 아토피 앓던 폐의 말초 햇꽈리마다 너의 모습 자아내는데 알알이 맺힌 노란 보습제 꽈리가 흩뿌리는 날 보아달라는 진물이다 노오란 그늘 아래 눌러앉아 문자를 친다 스마트폰은 너와 내가 함께 숨 쉬는 폐 음성통화는 심장 박동 영상통화는 말초 신경 핸드폰은 겨우내 아토피 앓았다 둘의 체온은 시들했고 말초신경염에 걸렸다 비듬이 된 번호 하나 둘 핸드폰 안테나에 노랑 고름 적셔 걸면 너에게로 내가 스며들까 산수유꽃 100기가 따서 낯선그리움 1메가 짜서 응답 없을 영상메시지에 또 또 첨부파일 하련다. 더보기